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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산 기슭
곰곰나루 | 부모님 |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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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설가 박덕규가 2000년 이후 25년 동안 발표한 신작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표제작 <흰 산 기슭>, 일반 단편의 두 배 분량인 <구부러진 물길>, <소나기>(황순원) 이어쓰기로 쓴 기획소설 <사람의 별> 그리고 <지렁이, 지렁이떼>, <싸락눈>, <비밀의 방>, <조선족 소녀> 등 총 7편을 실었다.

  출판사 리뷰

소설가 박덕규가 2000년 이후 25년 동안 발표한 신작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박덕규는 1980년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 문학평론, 동화 등을 아울러 발표해 온 대표적인 다장르 작가다. 1996년 <날아라 거북이>, 1999년 <포구에서 온 편지> 등 단편소설집을 내면서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비속화한 삶의 일상을 다루는 한편으로 집단의 구조적 모순과 폭력 앞에 무너진 개인의 삶을 묘사해 온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탈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해박한 인식을 드러낸 일련의 작품으로 글로벌세계에 접어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이면을 들춰낸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소설집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등). 이 소설집은 특히 지난 25년간 인터넷시스템의 보급과 정착 과정에서 변화해 온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현실에서 사라진 인물’에 대한 추적을 통해 드러내는 소설 여러 편을 앞세운다. 표제작 <흰 산 기슭>, 일반 단편의 두 배 분량인 <구부러진 물길>, <소나기>(황순원) 이어쓰기로 쓴 기획소설 <사람의 별> 그리고 <지렁이, 지렁이떼>, <싸락눈>, <비밀의 방>, <조선족 소녀> 등 총 7편을 실었다.

출판사 서평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한국사회가 분단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이어 구가하던 때로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동안의 시대 현실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가령, 일반 단편소설의 두 배 분량인 「구부러진 물길」은 청·장년기를 1970~80년대 대학가의 시공간에서 보낸 인물들의 일대기적 삶을 2010년대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는 내용이다. 표제작인 「흰 산 기슭」은 남북분단과 연관해 출생비밀을 품은 듯한 인물이 21세기 문명기기를 다채롭게 활용하며 통일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비밀의 방」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 과정의 이면에서 출세지상주의를 삶의 지표로 삼은 인물들이 명멸한다. 「싸락눈」은 세기 말 세기 초 사회 전반의 경제위기로 몰락한 형제들의 비탄을 담고 있다. 「지렁이, 지렁이떼」 역시 정보화시대에 가치 혼란에 빠진 인물들의 방황을 그린다. 또 「조선족 소녀」는 작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집중해 온 탈북 문제를 내면화하고 있고, 황순원의 명단편 「소나기」의 이어쓰기 기획으로 집필한 짧은 소설 「사람의 별」은 생태 위기를 주목하는 시대적 화두를 SF 양식에 담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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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의 소설은 캐릭터 창조나 서사적 구조, 화자와 시점 운용 등에서 예상을 뒤엎는 상상력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흔한 리얼리즘적인 주제를 새삼 뜻밖의 일로 환기하는 데 능통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사람의 별」에서 원작 「소나기」의 소녀를 ‘생태계 파괴의 위기를 맞은 어느 별에서 오염되지 않은 지구의 시골마을 농부 자식으로 파견된 인물’로 설정한 것과 같은 ‘기상천외함’이 박덕규 소설에 있다. 혼자 일방적으로 기이한 통일운동을 제안하다가 갑자기 종적을 감춘 듯한 시애틀 동포(「흰 산 기슭」), 자신들이 파멸시킨 당사자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하고 출산에 성공한 부부(「구부러진 물길」), 한국의 젊은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상당 재산을 걸고 공개모집을 하는 벨기에 부호(「비밀의 방」),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종적을 감춘 대학 겸임교수나 폭력과 돈으로 장악한 여고생에게 순정을 다 바치는 경찰관(「지렁이, 지렁이떼」), 위조한 여권으로 탑승한 비행기가 공중 폭파되어 영원한 실종자가 된 사업가(「싸락눈」), 거주할 곳을 얻지 못해 중국의 어느 산속 닭장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 가족(「조선족 소녀」) 등의 뜻밖의 인물설정도 바로 그렇다. 재미동포(「흰 산 기슭」), 탈북민과 재중동포(「조선족 소녀」), 국제 미아(「싸락눈」), 히말라야여행자(「구부러진 물길」), 지구 여행자(「사람의 별」) 등 노마드 인물이 편편이 등장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서사적 지위가 다른 여러 시점인물을 릴레이로 연결하면서 중심서사와 주변서사를 혼재하는 서사 구축 방법도 매우 남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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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의 전통에서 볼 때 박덕규의 소설은 우리가 겪는 사회 변화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매우 낯익은 ‘사회비판 유형’에 가깝지만, 주제와 소재를 직조하는 다채롭고 다각적인 시도를 통해 그러한 현실의 반영과 비판을 상당부분 낯설게 행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양태’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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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의 여러 편 소설은 이처럼 서사의 현재적 정황에서는 ‘없는’ 인물인데도 서사적 전개에 압도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 작동하고 있다. 그 인물은 현재 실종 또는 사망 또는 은둔을 한 상태이고 다른 주인공이나 주변인물은 그를 추적하고 회상하거나 크게 의식하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박덕규 소설은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적 사건과 현실에서 부딪히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 뒤얽히는 서사를 구축해 보인다. 이 사소함과 중후함의 뒤얽힘은 얼핏 불협화음을 일으켜 독자의 편한 독서를 방해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으로 독자가 서사상황을 쉽게 수용하는 것을 지연시키고 나아가 결국은 재독하게 만드는, 작가가 노린 일종의 소격효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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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의 소설이 실종 상태이거나 은둔해 있거나 사망한 인물을 다른 주요인물이나 주변인물이 들춰내는 과정을 서사의 축으로 삼는 특징이 있음을 앞에서 이해했다. 서사의 현재 상황에는 출현하지 않으면서도 서사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없는데 막강한’ 인물의 효과가 특별하다는 점도 밝혔다. 또한 이런 방식이 ‘의도적으로 감춰놓은 것을 추적해서 조금씩 찾아내는’ 추리물 패턴과 매우 닮아서 ‘미스터리한 효과’마저 얻는다는 점도 아울러 새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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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의 이번 소설에서 ‘없는데 막강한’ 인물들은 대개 이처럼 ‘자본논리에 빠져 비속화한 삶’의 당사자이거나 희생자로 연루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인물들은 작중 서사에서 가족 등 다른 인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상태이며, 그 가족이나 친지 등은 몰락이나 해체, 위기, 혼란 등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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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몰락한 그들 대부분이 일차적으로 남성, 그것도 대개 가부장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가장 또는 그에 준하는 지위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중세(「싸락눈」), 김하근(지렁이, 지렁이떼), ‘나’(조선족 소녀」), 차동하(「구부러진 물길」), 동진(「흰 산 기슭」)은 모두 한 집안의 가장이고, 정균(「비밀의 방」)은 집안 장남으로서 장차 집안을 이끌어야 할 존재였다. 출세를 하지 못한 가장으로서 게다가 몰락한 상황이라면 그것으로 가계에 미칠 영향이 빤하다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소설이 그린 가장의 몰락은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산업화 시대 이후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남성성의 거세’라는 사회적 의미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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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대개 물질이 가치를 결정하는 세태에 대한 강한 비판을 그 세태의 조력자이거나 피해자로 ‘사라진’ 인물에 대한 추적 서사로 완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출구 없는 암울한 현실’ 자체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해 제시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들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의 빛을 지우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주목을 요한다. 가령 「지렁이, 지렁이떼」는 함몰해 버린 김하근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학생들의 자기 세대다운 ‘영상적 행동’은 서사의 중심에 시종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또는 「싸락눈」에서 중세의 몰락과 더불어 남은 가족이 “이곳이 지옥이라면 내가 곧 지옥에 떨어진 인간이지 않을까”라는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원준이 보여주는 “격의 없는 폭소”나 「조선족 소녀」에서 “연길에서 조선족의 딸로 태어나 한국에 유학 와서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와 심각한 따돌림을 겪으면서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하고 있는 대견한” 용옥의 태도 또한 각 작품에 남다른 윤기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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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박덕규가 왜 그토록 사라진 인물들을 사라진 그 자리에 두지 않고 끝까지 들춰내 온 것인가를 이해할 만하다. 즉, 이 소설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막아놓은 진정한 삶의 세계를 온몸의 무너짐이라는 극적 서사로 복원하려는 신선한 시도의 연속이라 하겠다.




세계사의 격류, 국내 정치사회의 격랑, 그 포말에 휘말린 개인의 부침이 당연히 주제나 소재로 잡혔고, 그걸 드러내는 서사기법의 변주나 실험도 단편소설답게 발현해 있을 거다. 무엇보다 내 나이 장년에서 노년으로 이르는 시기의 삶의 아픔을 지난날의 추억에 뒤섞는 체험적 상상으로 서사의 축을 세웠고, 후회와 회한에서 얻은 나름의 교훈으로 한 연대를 아우르거나 미래를 예감하는 기세도 가미했다. - ‘작가의 말’에서

“돈이 없는 남자는 삶이 곧 죽음이겠지. 그럼 돈을 잘 벌기 위해 사는 삶은 뭐냐, 그건 노예라. 온몸이 발가락뿐인 지렁이지. 캬, 이건 죽이는 시 구절인데…. 이 세상 남자들, 지상으로 잘못 나와 땅 속으로 돌아갈 길을 잃은 지렁이 꼴 아니야? 여러분 아빠, 군대 간 오빠, 애인… 다 생각해 보라구. 아, 이렇게 되면 얘기가 자꾸 빗나가는 건데… 그런데 실은 말이지, 원래 지렁이는 어떤 존재냐 하면, 그 가치와 실용성 면에서 최고의 생명체지. 일명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존재야….”
지렁이는 땅 속에서 유기성 폐기물과 가축 분뇨를 먹어치우 고… 그 몸에 필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그런 얘기는 필기를 하고도 금세 다 잊어 버렸지만, 재기발랄하고 자리분별이 뚜렷한 지구인 김하근 교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지구인 얘기만은 정실은 지금도 잘도 기억하고 있다. - <지렁이, 지렁이떼>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덕규
1958년생으로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시운동’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 등단,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으로 평론가 등단, 1994년 『상상』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 등단. 시집 『아름다운 사냥』(1984), 『골목을 나는 나비』(2014), 『날 두고 가라』(2019),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1996), 『포구에서 온 편지』(2000), 장편소설 『밥과 사랑』(2005), 『토끼전 2020』(2018) 등. 곰곰나루 문학아카데미 등 on, off-line 강좌 운영. 단국대 문예창작과 초빙·명예교수.

  목차

작가의 말

지렁이, 지렁이떼
싸락눈
비밀의 방
조선족 소녀
구부러진 물길
사람의 별
흰 산 기슭

해설 : 무너진 사람들, 그 배후 –김유림(문학평론가)
수록작품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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