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고려는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국인 요나라와 금나라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덕분에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나라·금나라·송나라 등 제국들이 연이어 멸망한 후 전대미문의 대제국 몽골(원나라)이 고려를 침략했다. 유라시아대륙을 유린한 몽골의 기마군단을 상대하여 승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몽골군은 적군이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적군을 초토화한 악마였다. 그럼에도 고려는 30여 년 동안 대몽 항쟁을 펼쳐 끝내는 종묘사직을 지켜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던 역량은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한 저항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이 강대했던 요나라·금나라·원나라의 침략을 극복하고, 474년 동안 고려가 종묘사직을 지킨 것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출판사 리뷰
고려가 몽골에 맞서 사직을 지킨 것은
유목민족 요나라와 금나라의 침략을 극복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려는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국인 요나라와 금나라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덕분에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나라·금나라·송나라 등 제국들이 연이어 멸망한 후 전대미문의 대제국 몽골(원나라)이 고려를 침략했다. 유라시아대륙을 유린한 몽골의 기마군단을 상대하여 승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몽골군은 적군이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적군을 초토화한 악마였다. 그럼에도 고려는 30여 년 동안 대몽 항쟁을 펼쳐 끝내는 종묘사직을 지켜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던 역량은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한 저항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이 강대했던 요나라·금나라·원나라의 침략을 극복하고, 474년 동안 고려가 종묘사직을 지킨 것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변방의 오랑캐로 비하하던 거란족과 여진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 문명을 받아들였지만, 끝내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사라지고 만다오늘날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은 기원전 2070년 무렵에 황하 중류의 중원 지방을 중심으로 중국 최초의 노예제 왕조인 하나라를 건국한 이래 상나라·주나라·진나라·한나라, 위진남북조, 오대십국 시대 그리고 수나라·당나라로 이어지는 한족 중심의 봉건 왕조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한족은 황하와 중원 지방을 항상 자신들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으며, 주변 민족은 동이·서이·남만·북적 등 이른바 ‘사이(四夷)’라 칭하며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한족은 강인하고 싸움을 잘하는 북방 유목 민족의 침략을 가장 두려워했으며, 그들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미개인 취급을 하고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당나라가 망한 후 천하대란의 시대에 오대십국이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요하 유역에서 수렵과 유목 생활을 하던 거란족의 위대한 영웅 요 태조 야율아보기가 거란을 건국했다. 그의 아들 요 태종 야율덕광이 대요를 건국한 이래 요나라의 최대 강역은 중국의 북부 지방, 몽골, 연해주 등 대략 400만 ㎢에 달했다. 요나라는 10세기 초에서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서 남으로는 북송을 굴복시켜 해마다 엄청난 세폐를 받았으며, 북으로는 서하를 종속시키고 여진족과 몽골족을 다스렸으며, 동으로는 발해를 멸망시키고 압록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고려와의 조공 관계를 확립했다. 소수의 유목 민족에 불과했던 거란인들은 변방의 한계와 한족의 편견을 극복하고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유목 민족의 제국인 요나라를 건국함으로써 당당하게 중국 역사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중국 역사가 더 이상 한족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요나라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남북 면관제’라는 독특한 이원적 통치 제도를 운영했다. 북면관은 거란족·여진족·몽골족 등 유목 민족을 다스리고, 남면관은 한인 등 농경 민족을 다스렸다. 요나라가 209년 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역량은 유목 민족의 전통과 관습을 바탕으로 한족의 봉건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인 것에서 나왔다고 본다. 거란족은 원래 샤머니즘을 숭배했으나 요나라를 건국한 후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불교는 이미 도교와 함께 한족의 정신문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거란 귀족도 한족 문명에 동화되면서 불교를 숭상했다. 하지만 요나라는 불교 때문에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의 폐단이 심각했다.
12세기 초 요나라의 국운이 기울 무렵에 중국 동북 지방의 안출호수 유역에서 완안부 여진족의 위대한 영웅 완안아골타가 등장했다. 여진족은 거란족과 마찬가지로 유목 민족이지만, 우리 한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족 문명에 동화된 후 여진족을 멸시하며 오랑캐로 취급했다. 사실은 완안아골타의 조상이 고려인이었다는 얘기가 정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샤머니즘을 숭배하고 전통 풍습이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아, 여진족과 한민족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는 요나라가 여진족에게 채운 ‘노예의 쇠사슬’을 끊고 흥기하여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대금을 건국했다. 완안아골타의 동생 금 태종 완안오걸매는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원 지방을 장악했다. 이는 유목 민족이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한족 문명의 발상지를 차지하고 한족을 직접 통치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그 후 금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끊임없이 남송을 압박하여 주종 관계를 확립하고 막대한 세폐를 받아내었다. 금나라는 119년 동안 종묘사직을 이어오면서 중원 지방의 진정한 주인이었으며 남송을 속국으로 거느린 제국이었다. 금나라는 건국 초기에는 여진족의 전통적인 부족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맹안모극’이라는 군사 및 행정 조직 제도를 운영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료제, 율령, 과거제 등 한족 왕조의 봉건 제도를 도입하여 한족 문명화했다. 금나라를 전성기로 이끈 금 세종 완안옹은 여진족의 언어와 풍습이 한족 문명에 흡수되는 것을 우려하여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대세를 거스르지 못했다. 금나라가 몽골에게 멸망하고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여진족(만주족)이 또 흥기하여 중국의 마지막 봉건 왕조인 청나라를 건국했다. 청나라도 여진족이 한족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끝내는 한족 문명에 동화되고 말았다.
요나라와 금나라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거란족, 여진족은 한족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이었다.물론 한족도 거란족과 여진족을 이민족으로 간주했다. 게다가 한족은 두 유목 민족의 호전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송나라와 요나라 그리고 금나라가 서로 싸운 것은 복잡한 국제 관계의 일환이었지, 중국 경내의 민족 통일 전쟁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나라와 금나라의 황제들은 스스로 ‘중국의 황제’임을 자부하고 역대 한족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뜻밖에도 거란족과 여진족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족 문명에 동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원나라를 건국한 몽골족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중국에서 말하는 ‘중화민족’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개념이다. 요 태조 야율아보기와 금 태조 완안아골타가 유목 민족의 수장으로서 중국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중국 천하를 호령했기 때문에, 또 다른 유목 민족인 몽골족의 칭기즈 칸이라는 희대의 정복자가 나타나 인류를 놀라게 했다고 본다. 야율아보기와 완안아골타가 칭기즈 칸의 앞길을 열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중국 역사는 오로지 한족에 의해서 움직인 역사가 아니라, 거란족·여진족·몽골족 등 유목 민족도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외침을 가장 많이 당한 왕조는 고려이다. 요나라를 최전성기로 이끈 요 성종 야율융서는 26년 동안 고려 원정을 세 차례나 강행했다. 당시 영토, 인구 등 국력에서 요나라에 절대 열세였던 고려는 뛰어난 외교 수완을 발휘하고 끈질기게 항쟁한 끝에 자주권을 지킬 수 있었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요나라의 10만 대군을 섬멸한 귀주대첩은 민족사의 쾌거였다. 금나라도 압록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고려와 충돌했지만, 국경 지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외교적 타협을 선택했다. 고려는 형식적으로 금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는 대신에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을 폈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 등거리 외교를 가장 잘한 왕조는 다름 아닌 고려였다. 물론 여진족도 자신의 뿌리가 고려에 있음을 알고 고려를 형제의 나라로 여겼으며, 몽골의 침략에 맞서기 위하여 고려와의 관계 개선이 절실했을 것이다. 고려는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국인 요나라와 금나라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덕분에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나라·금나라·송나라 등 제국들이 연이어 멸망한 후 전대미문의 대제국 몽골(원나라)이 고려를 침략했다. 유라시아대륙을 유린한 몽골의 기마군단을 상대하여 승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몽골군은 적군이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적군을 초토화한 잔인한 군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30여 년 동안 대몽 항쟁을 통하여 끝내는 종묘사직을 지켜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었던 역량은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한 저항 경험에서 나왔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이 강대했던 요나라·금나라·원나라의 침략을 극복하고 474년 동안 종묘사직을 지킨 것은 세계사에 유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은 원나라 사람 톡토아(1314∼1356) 등이 편찬한 『요사』와 『금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중국 정사에서 황제 본기를 서술한 뒤 마지막 부분에는 ‘찬왈(贊曰)’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짧은 평론이 있다. 이 문장은 황제의 성격, 업적, 과오, 역사적 교훈 등을 춘추필법으로 간결하게 평가한 것이다. 그 내용이 촌철살인이므로 원문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정만
1996년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과 중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했다. 2018년 서남대학교에서 퇴직한 후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저술하고 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래 양국은 여러 분야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양국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크다. 하지만 근년에 이르러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아주 낮다.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싫어하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관심이 없으면 무지와 오해를 낳는다. 양국은 순망치한의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필자는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황제 중심의 중국 역사를 소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요나라 역대 황제
제1장 요 태조 야율아보기
1. 거란족의 기원과 형성
2. 부족장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 연맹의 군권을 장악하다
3. 가한으로 추대된 후 중원 왕조와 동맹을 맺다
4. 가한 독점에 불만을 품은 동생들의 반란을 진압하다
5. 거란을 건국하고 황제로 등극하다
6.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정복 전쟁에 나서다
제2장 요 태종 야율덕광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후당을 멸망시키고 석경당을 꼭두각시 황제로 삼다
3. 후진을 멸망시키고 국호를 대요로 바꾸다
4. 중원 한족의 반발을 제압하지 못하고 북방으로 철수하다
제3장 요 세종 야율완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횡도의 맹약’으로 단완태후의 반발을 무마하다
3. 연이어 일어난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다
4. 화신전의 반란: 남정 도중에 피살되다
제4장 요 목종 야율경
1. 야율옥질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다
2. 귀족, 신하들이 끊임없이 모반을 획책하다
3. 학살과 포악함이 극에 달하다
4. 후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다
5. 흑산의 변: 시종들에게 시해를 당하다
제5장 요 경종 야율현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어진 신하들을 중용하여 중흥의 기반을 다지다
3. 북송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다
4. 황후가 황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보살피다
제6장 요 성종 야율융서
1. 모후가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하다
2. 북송과 ‘전연의 맹약’을 맺다
3. 고려와의 26년 전쟁에서 패배하다
4. 내치와 외치에 성공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다
제7장 요 흥종 야율종진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모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다
3. 유흥과 사냥을 즐기며 국정을 돌보지 않다
4. 북송을 압박하여 세폐를 늘렸지만 서하 정벌은 실패하다
제8장 요 도종 야율홍기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충신은 쫓아내고 간신은 중용하다
3. 황태숙 야율중원의 반란을 진압하다
4. 야율을신에게 농락을 당하여 황후와 태자를 죽게 하다
제9장 천조제 야율연희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고 사냥에 빠져 지내다
3. 여진족 완안아골타가 일어나 요나라를 공격하다
4. 고욕·야율장노·고영창 등이 반란을 일으키다
5. 소봉선에게 속아 문비, 아들 등을 죽이다
6. 금나라군에게 쫓겨 떠돌다가 망국의 군주로 전락하다
금나라 역대 황제
제1장 금 태조 완안아골타
1. 전공을 쌓아 여진부족 연맹의 수장으로 추대되다
2. 요나라를 정벌하고 금나라를 건국하다
3. 연전연승을 거두며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4. 북송과 ‘해상의 맹약’을 맺다
5. 요나라를 망하게 하고 내치에 힘쓰다
제2장 금 태종 완안오걸매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장각의 반란을 진압하다
3. 고려와 종번 관계를 맺고 후방의 안정을 도모하다
4. 북송을 멸망시키고 남송으로 진격하다
5. 위민 정책과 제도 개선으로 발전의 초석을 다지다
제3장 금 희종 완안단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한화 정책을 실시하고 종실들을 제거하다
3. 완안종간과 완안종필이 국정을 보좌하다
4. 미치광이로 변하여 궁중 정변에 피살되다
제4장 해릉양왕 완안량
1. 궁중 정변을 일으켜 황제로 등극하다
2. 살인 행각을 벌이고 패륜을 일삼다가 피살되다
제5장 금 세종 완안옹
1. 아내 오림답씨의 희생 덕분에 살아남다
2. 해릉왕이 남송 정벌을 떠난 틈을 타 황제를 칭하다
3. 직언을 장려하여 언로를 창달하다
4. 사치를 배격하고 실질을 숭상하다
5. 고금의 역사를 통해 통치의 귀감을 얻다
6. 여진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지배 계급을 공고히 하다
7. 선정을 베풀고 인접국과 관계를 개선하여 ‘대정의 치’를 열다
제6장 금 장종 완안경
1. 태자 완안윤공의 서거로 황위를 계승하다
2. 삼촌 완안영도와 완안영중을 제거하다
3.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를 다스리다
4. 금 세종의 업적을 계승하여 ‘명창의 치’를 이루다
5. 남송과의 ‘가정화의’를 체결하다
6. 이사아와 서지국이 국정을 농단하다
제7장 위 소왕 완안영제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금 장종의 비빈들을 제거하다
3. 금나라군이 몽골군과 동요군에게 궤멸되다
4. 권신 호사호에게 쫓겨난 후 독살당하다
제8장 금 선종 완안순
1. 호사호, 도단일 등 대신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다
2. 기울어진 국운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3. 남경으로 천도한 후 중도성이 함락되다
4. 지방 군벌 9명을 제후로 책봉하다
5. 남송을 침략하여 국운 회복을 도모하다
제9장 금 애종 완안수서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망국의 위기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3. 삼봉산 전투에서 몽골군에게 참패를 당하다
4. 남경성을 포기하고 귀덕으로 피신하다
5. 귀덕에서 포찰관노에게 연금되다
6. 채주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가 자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