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당신은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고독과 은둔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다가올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마루야마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오직 집필에 전념해 온 ‘고독’과 ‘은둔’의 작가다. 그런 그가 소설에 전념한다는 철칙을 깨고 다른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 이 책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겐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그들이 펜을 쥐고 글을 쓰게 될 때를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문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실망하고 도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꼭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을 지난 30여 년간 쌓아 왔다.
겐지가 쏟아내는 말들은 거침없고 냉철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후배들이 고민하지 않고 이 길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문학이라는 무한히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용감히 뛰어들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인 요소뿐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이 책을 쓴 것은 오직 당신 같은 소설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를 향한 기대와 당부소설가가 소설 집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 최소한의 상식이 이상적이거나 금욕적으로 보인다면, 당신이 진짜 노리는 것은 소설이 아닌 것에 있으므로 펜을 들기 전에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하고. (8~9쪽, ‘머리말’ 중)
이 책은 막연하게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럴싸한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마루야마 겐지가 기다리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는 문학계의 구원자다. 안이하고 한심한 현실을 딛고 “똑바로 소설가의 길을 헤쳐 나갈” 자다. 이에 먼저 그 길을 걸은 선배로서 고독과 은둔, 그리고 창작과 자립으로 가득 찬 소설가의 생활은 무엇인지 낱낱이 밝힌다. 즉 소설가의 식습관, 돈 관리와 건강 관리, 인간관계, 거주 환경에 대해, 퇴고 방법과 장편 소설 쓰는 법, 재능과 노력 등 전방위적인 조언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겐지의 조언은 명료하다. 소설가라면 소설에 전념할 것, 전념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고 포기할 것.
첫 번째 장 〈내가 기다리는 소설가〉에서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세 가지 유형’에 대해 말한다. 첫째, ‘누구의 무슨 작품 같은 소설을 나도 쓰고 싶다’고 하는 동경 유형. 둘째, ‘이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유형. 셋째, ‘이 정도 수준을 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다가 ‘이런 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마침내 ‘훨씬 더 엄청난 소설을 쓰겠다’라는 다짐으로 펜을 드는 유형이다. 이 중에서 겐지가 고대하는 소설가는 ‘세 번째 유형’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진짜 재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 〈쓰면서 쓰는 법을 터득한다〉에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위해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는지, 세 번째 장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에서는 등단 이후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네 번째 장 〈펜 한 자루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섯 번째 장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소설 쓴다는 것, 문학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설을 벗어나 돌아갈 곳이 있는지 되묻는다. 또한,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새로운 소설가, 즉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이 나타나 주기를 고대한다.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한 사람이다”
진실한 소설가가 경계하는 것인간이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한,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하는 인간입니다. (209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
겐지는 지금까지의 문학이 추락하고 있다고 외친다. 정확히는 문학이 아니라 문학과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소설가뿐 아니라 편집자, 독자, 평론가도 포함된다. 소설이 아닌 것에 기웃거리면서 한눈파는 소설가, 문학에 대한 애정 없이 회삿돈으로 소설가와 친목을 도모하기 급급한 편집자, 소설가에게 작품 외적인 것을 기대하는 안목 없는 독자, 청춘 시절 읽고 감명받은 작품을 지상 최고라고 여긴 채 더는 나아가지 않는 평론가. 이들이 세력을 이루어 문단의 주류가 되고,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을 비문학적인 것으로 배제하여, 결국 문학을 추락의 길로 내몬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문학이 ‘다 큰 어른들이 모여 예술가인 척하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특히 기존의 소설가, 개중에서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강연을 하고, 어느 정도 알려진 유명세로 원고료의 몇 배나 높은 몸값을 주는 일을 척척 하는 소설가들, 밥벌이를 핑계로 의뢰받은 족족 ‘쓰나 마나 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문단의 권위나 국가의 권력에 다가가는 소설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고 안 되고는 기존의 소설가들과는 정반대인 소설가의 등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소설가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문학은 언제까지고 부상하지 못한 채 침몰선 같은 운명을 밟게 될 겁니다. (25쪽,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중)
그렇다면 진정한 문학의 시대의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겐지는 지구력과 자립심, 성실함, 뒤돌아보지 않는 것 등이다. 그는 일관되게 소설 외에 다른 것 보기를 경계한다. 즉 스스로 의욕을 가지고, 스스로 쓰며, 몇 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자신이 쓴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언어를 붙잡아 헤엄치는 것을 배우고 마침내 저 먼바다를 향해 나아” 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비웃고,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미래의 소설가에게’
말이 아닌 작품으로 보여 주기를문학의 무한히 너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언젠가 수평선 저 너머에서 홀연히 나타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나와는 정반대되는 자세로, 이 책을 비웃으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들고 나타날 당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215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
겐지가 기다리는 소설가는 ‘자립한 삶’을 사는 소설가다. 자립했거나 자립하려는 소설가만이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수 있다. 안정된 시대에 태어나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한 사람,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권위주의자, 사대주의자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없다. 적게 먹고, 적게 벌고, 적게 만나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며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30년 만에 큰마음을 먹고 새로운 젊은 소설가들에게 삶을 바친 조언을 쏟아 내면서도 ‘이 책을 비웃고,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할 작품을 들고 자신 앞에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이는 겐지가 이 책에서 수없이 강조하는 소설가의 자세와 일맥상통한 조언이다. 자신의 조언 역시 부정하고 부디 그만의 길을 가기 바라는 응원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겐지가 지향하는 자립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위 관계를 정리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고 해서, 고독과 맞서 싸운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닫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자립한 소설가의 자세는 자신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마음을 여는 고고한 자세다. 끝없이 안으로 틀어박히는 삶의 방식과는 반대되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다. 그리하여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오로지 ‘작품’으로 쏟아내는 자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는 그저 단순하고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거나 희망하는 무수한 무명의 신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쓰면서 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삼류 소설가가 강의하는 문화센터 수업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빨리 숙달됩니다. 게다가 기성 문학에 영향을 받는 일도 없으니 독자적으로 문학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쓴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자신이 그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해 세상을 등진 사람인지, 아니면 진짜 재능이라 할 만한 것을 지닌 사람인지가 분명해질 겁니다. 재능의 유무가 분명해지는 것만으로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