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다 카포(Da capo)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음악 용어이다. 수필 50편이 4부로 나뉘어 실린 이 책에는 남편을 떠나보낸 작가가, 그렇게 다시 삶을 연주해 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출판사 리뷰
이지윤 작가가 첫 수필집 《다 카포(Da capo)에 서다》를 선보인다. 다 카포(Da capo)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음악 용어이다. 수필 50편이 4부로 나뉘어 실린 이 책에는 남편을 떠나보낸 작가가, 그렇게 다시 삶을 연주해 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 또한 저에게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뜻밖’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문학 또한 뜻밖에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작가를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이지윤 작가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특히 남편과의 사랑, 그리움, 추억이 어우러진 이 책이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이제 우리의 늙음 앞에 ‘캠핑카 놀이’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했던 로망, 어쩌면 그가 가고 싶었던 유년의 바다로 향하는 꿈이었을 그 놀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말마다 설레며 종이 속을 달리던 캠핑카는, 어느 날부터 조용히 멈춰 섰다. 그의 손끝은 점점 느려졌고, 지도 위의 빨간 동그라미도 더는 늘지 않았다. 캠핑카는 끝내, 실물이 되지 못했다. 몇 권의 카탈로그와 낡은 지도, 그리고 몇 장의 A4 용지에 남겨진 너저분한 메모가 전부였다.
그는 소세포암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펄쩍펄쩍 날뛰던 물고기처럼 신이 나서 숨 가쁘게 자랑하던 유년 시절 여수 앞바다, 땅끝마을 해남의 낚시터, ‘여기선 글이 잘 써질 것 같아.’라며 빨간 줄을 긋던 섬진강 강가, 누렇게 바랜 메모지와 때 묻은 지도 위, 그의 손끝에서 밑줄 그어진 이름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 장의 용지에 빼곡히 적어 내려간 그 수많은 꿈이 문득 내 등을 떠민다. 그 풍경들은,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A4 한 장> 중에서
엄마는 열아홉, 새색시 시절부터 올린 단아한 쪽찐 머리를 평생 놓지 않으셨다. 화장하지 않았던 엄마의 경대 위에는 로션 하나와 동백기름, 촘촘한 참빗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엄마는 이른 아침이면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틈새 하나 없는 기름진 긴 머리를 손가락에 돌돌 말았다. 그리고 옥빛 비녀를 암팡지게 꽂고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을 것 같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쪽찐 머리에 어울리기 때문인지, 엄마의 취향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부분 한복 차림이었다. 더운 여름에도 외출 때에는 반드시 하얀색이나 비취색의 세모시 적삼과 투박하고 거친 삼베 치마를 입었다. 언제나 풀을 먹이고 곱게 다린 한복 차림의 단아한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친구들 엄마 패션과는 너무도 다른, 쪽찐 머리에 하얀 고무신까지 갖춰 신은 엄마의 모습은 어린 내게 창피함이었고, 때로는 움츠러들게 했다.
-<쪽찐 머리> 중에서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여름, 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도, 나에 대한 열망도 내려놓은 채 무심한 나날을 보냈다. 무의미하게 방을 서성이던 어느 날, 딸아이 책상 위에 놓인 빨간 표지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그저 무심코 집어 들었을 뿐인데,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달라졌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한겨울 동치미처럼 알싸하고 청량한 문장들이 나를 뒤흔들었다. 싱하 레몬 소다처럼 톡 쏘는 이야기들과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시선은 무뎌졌던 내 감각을 단숨에 깨워주었다. 그 짜릿한 호기심은 ‘젊은 작가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미 알려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나를 이끌었다. 김금희, 예소연, 손보미, 김기태, 정용준…. 그들의 작품을 읽던 중, 박상영과 김멜라의 퀴어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중략)
문학은 그렇게, 뜻밖에도 나를 바꿔놓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고정관념을 흔든 낯선 아름다움>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지윤
군산 출생. 중학교 음악 교사로 임용되어 교장으로 정년퇴임.2021년 제32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수필 부문 대상 수상.2022년《에세이문학》봄호 등단.2025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 생애지원금 수혜.2025년 수필집《다 카포(Da capo)에 서다》출간.현재 (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인천문인협회 이사.에세이문학작가작가회, 수필미학작가회 회원.
목차
작가의 말 _4
1부
A4 한 장 _13
시어머니 _18
나날 _23
하이힐과 돋보기 _27
라면의 반란 _31
외로움은 가고 고독이 찾아왔다 _35
입안 가득한 그리움 _39
아직, 끝나지 않았다 _43
고발합니다 _47
보름달 카스텔라 _51
정겹던 소리가 낯설어질 때 _55
삼키지 못한 여름 _59
다시, 배짱을 쓰다 _62
2부
쪽찐 머리 _71
어느 여름의 수박 향 _77
어머니의 화양연화 _82
아직 내가 살아 있잖냐, 잉? _87
보부아르의 분노 _92
그 복도에서 울다, 웃다 _96
달거리 식탐 _99
고정관념을 흔든 낯선 아름다움 _104
시아버지와 약탕기 _108
가로등의 온기 _113
그 밤, 내 콧잔등 위의 땀방울 _116
달을 품고 있는 유리잔 _121
3부
따뜻한 파문 _129
옹기 항아리 _135
그 여자의 책 _139
허리를 펴고, 나를 세우다 _143
맛있는 입덧 _148
검은 재킷 _152
아줌마는 없었다 _155
철(節)갈이 _160
퇴직했잖아요! _164
하얀 뿌리 _167
고소함과 착각 사이 _171
두 여자, 절망의 봄밤 _174
아주 보통의 하루 _179
4부
복권 놀이 _187
제주도 _193
아침 _198
어서 벗어요! _201
코발트 코르덴 스커트 _206
원적산공원의 환경예술가 _210
‘괜찮으세요?’ 그 말이 괜찮지 않았다 _214
추억의 정기구독 _219
원적산공원의 합주곡 _222
시루 안의 사랑 _226
황태의 시간 _234
Viva la Vida _238
후기 용인묘지공원 _244
서평 그대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을 이승하 _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