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024년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제작 지원’ 사업 도약부문 선정작!
“절대온도로 바라본 세상엔 영하가 없다.”
삶을 데우는 다감한 시선과학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에세이. 산소와 질소, 정크 DNA, 우주 행성, 시야각, 파동, 미생물 등의 과학 현상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따뜻한 상상력을 더한 36개의 글이 담겨 있다. 갈등이 팽배하는 세상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과학 개념인 ‘절대온도’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절대온도의 틀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차가운 온도가 0으로 치환되며 영하가 사라진다. 같은 온도일지라도 기준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음의 값을 선뜻 지워낼 수 있다. 즉 차디찬 이 세상에 필요한 건 영하가 사라진 절대온도 같은 시선이며, 차가운 시선을 거두려 억지로라도 노력할 때 혐오, 비난, 조롱 같은 부정적 기운이 끼어들 틈조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경쟁과 비교, 분열로 점철된 우리 사회, 갈등이 최고조로 향하고 있는 요즘 꼭 필요한 태도다. 희망을 잃어가는 지금, 절대온도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모두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계절도 마음도 겨울의 한복판에 머무는 지금,
봄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오직
같은 것을 보더라도 부정적인 시선을 지우려 노력하는 것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이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경제 위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서로에게 내뿜는 냉기 때문인지. 어느 한 가지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단은 계절도 마음도 엄동설한의 한복판에 있음은 분명하다. 계절이야 곧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겠지만, 우리 마음은 언제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추위를 뚫고 훈풍을 맞이하게 될까?
서현 작가의 첫 책 《절대온도의 시선》이 그 답이 되리라 본다. 제목처럼, 작가는 우리에게 ‘절대온도’의 시선을 지닐 것을 당부한다. 절대온도는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를 시작점으로 두는 온도 측정단위다. 영(0)이 중앙점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는 온도계, 그러니까 절대온도의 틀에는 영하가 없다. 같은 온도일지라도 그에 따른 기준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이너스, 음의 값을 선뜻 지워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절대온도 세상의 기준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적용해 본다. 지금은 남녀, 세대, 계층, 인종 각계각층으로 나뉘어 서로 혐오하고 비난하고 나와 다르면 배척하는, 갈등이 기본이 된 시대다. 온통 마이너스가 가득한 이런 차가운 세상을 기준점을 높인 절대온도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음의 값, 그러니까 부정을 지워낸 다감한 시선에서는(그것이 비록 애써 지워 낸 것일지라도) 같은 현상을 마주해도 다른 관점으로 다가온다. 분노가 용기로, 충동이 결단으로, 오만함은 자신감으로, 예민함은 섬세함으로도 보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절대온도의 시선이 과반을 이룬 세상. 그곳에선 비관과 영하의 시선마저 긍정적 시선으로 바뀔 수 있다. 과반만 넘어선다면 이미 퍼진 한기도 온기로 뒤덮어 상쇄가 가능하단 뜻이다. 열은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며 온도란 영원히 차갑지도, 무한히 뜨겁지도 못하는 균형추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이 서현 작가가 과학의 개념을 가져와 ‘절대온도’의 시선을 강조하는 이유다.
“차갑던 사람들의 시선 또한 따뜻함으로 족히 데워질 수 있다.”
과학이 당신의 삶에 온기가 될 수 있도록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따뜻한 상상력을 더하기과학은 보통 차갑고 냉철한 학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과학은 매우 따뜻한 학문임을 알 수 있다. 과학의 바탕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과학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차가워 보이는 과학에서도 숨은 온기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산소와 질소, 정크 DNA, 우주 행성, 시야각, 파동, 미생물 등의 과학 현상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따뜻한 상상력을 더한 36개의 글을 담아 지친 삶을 위로한다. 음의 값을 지워 낸 절대온도의 시선은 우리 삶을 어떤 모습으로 조명하게 될까.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절대온도가 만연한 세상〉에선 ‘단위’를 차용했다. 화학에선 온도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섭씨와 화씨 외에 ‘절대온도’라는 단위를 이용한다. 절대온도는 다른 온도 단위와는 달리 가장 낮은 온도가 0이다. 같은 온도를 다른 단위로 보면 음이 사라졌던 것처럼, 같은 현상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부정 대신 긍정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녹여냈다.
〈태도가 상쇄될 때〉에는 ‘파동’을 적용했다. 파동을 상쇄하려면 반대 모양의 파동으로 맞받아쳐야 한다. 같은 모양으로 받아치면 파고는 두 배로 커질 뿐, 상대의 태도가 무례할 때 똑같이 받아치고 싶은 욕구가 든다. 그럼에도 이이제이의 태도는 지양하고 현명하게 반응해야 할 이유를 파동의 간섭에 비유했다.
〈유일한 종, 무이한 계〉에는 ‘분류학’을 적용했다. 오리너구리는 부리가 있는데도 헤엄을 치고, 알을 낳는데도 젖을 먹이기 때문에 친척이 없는 독특한 종이 됐다. 그처럼 개성이란 억지로 튀는 게 아닌, 내가 가진 보편성을 합치고 섞어 교집합을 찾아내는 일임을 전달한 내용이다.
〈왜소행성 134340〉에선 ‘명왕성’을 비유했다.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을 태양계 8대 행성에 포함시켰다가, 100년도 채 안 돼 자격 조건에 미달된다며 멋대로 퇴출시켰다. 그렇게 왜소행성이 된 명왕성이지만, 남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그 자리에서 여전히 자신의 역할과 존재를 지키고 있다. 그처럼 외부 시선에 연연할 것 없이 내 할 일에 집중하는 태도를 조명했다.
경쟁과 비교, 분열로 점철된 사회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모두를 위한 위로
“내가 선이고 진실이니, 너는 악이고 거짓이다.”요즘 우리의 모습이 이런 것 같다. 인간은 진실과 거짓, 사실과 허위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역사를 이루어 왔다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날로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의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겨울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계절은 자연스레 봄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갈등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에도 온기를 건네는 손길이 아직은 살아 있으므로. 혐오의 정서가 너무 존재감을 키워서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움트고 있는 온기의 씨앗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다면 곧 여기저기 존재를 퍼트릴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렇게 온기가 과반을 이루게 되면, 한기는 곧 온기로 뒤덮어버릴 수도 있고 이 추위도 곧 사그라들 것이다.
차가움을 걷어 낼 수 있도록, 같은 걸 지켜보는 시선 속에서도 부정이 사라진 시선을 지니려 애쓴다. 같은 온도의 다른 표현. 가장 차가운 온도가 0으로 표현된 세상. 절대온도의 세상처럼 영하가 사라진 공간에는 음(陰)도, 마이너스도, 부정도 끼어들 틈이 사라지게 된다.
지금, 삶을 데울 ‘절대온도’의 다감한 시선이 필요한 순간. 이 책 《절대온도의 시선》이 모두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어느새 혼자가 편하거나 홀로 하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는 건, 이해라는 손아귀에 힘을 풀어 버린 대가다. 힘들고 귀찮다고 운동을 포기한 결과로 건강을 잃는 것과 상통한다.
- <이해할 수 없는 세상임에도>에서
뭉쳤을 때 그제야 드러나던 먼지 뭉텅이와 개미 떼처럼, 극소한 개개인의 생존법도 다를 바 없다. 내 것 하나 더 가져 보려 배척하다 한 톨의 먼지로 전락해 버리는 세상이다. 조금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뭉쳐 가는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보이지 못한 존재는 거대한 발 밑창에 밟히기 마련이니까, 혹여나 밟히지 않기 위해 끝없이 응집해야 하는 이유다.
- <먼지 뭉텅이>에서